(이 글을 쓰신 重步 金昌源선생님께서는 진식태극권대한민국총회의 회원이시며, 76세의 고령에도 불구하시고 본인 스스로 '태극권전도사' 라고 자처하실 만큼 태극권을 사랑하시고 알리는데 힘쓰시는 분입니다. 현재 번역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며 진선출판사 고문으로 계십니다.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약 11년 전에 '평양제2고보 동창회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1999년 12월 인천에서 태극권 시범

<내가 태극권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沈復이 사랑하던 아내 芸娘의 죽음을 맞아 애통과 허탈의 나날을 보내던 중 친구인 淡安과 揖山등의 권유에 따라 南華經을 읽은 뒤 하늘이 인간에게 허락한 삶의 뜻에 눈이 뜨고 逍遙와 太極拳으로 여생을 조용히 보내는 즐거움을 이야기한 그의 글에서다. 沈復은 지금부터 한 이백년 전, 淸나라 乾隆, 嘉慶 연간에 살았던 이름없는 풍류문인. 그러니 내가 그를 만났을 리야 없다. 그러나 나는 그가 남기고 간 한 권의 책 「浮生六記-흐르는 인생의 찬가> 속에 나오는 다음의 글로 해서 그와 친숙하다.

<태극권은 다른 拳法이 겨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太極이란 두 글자가 이미 이 권법의 의의를 모두 포괄하고 있다. 태극이란 하나의 동그라미다. 태극권은 바로 무수한 동그라미가 연속되어 이뤄지는 일종의 권법이다. 손 한번 들어올리고 발 한 번 내어 딛는데도 모두 이 동그라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동그라미에서 벗어나면 벌써 태극권의 원리에서 어긋난다. 四肢百骸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일단 움직이기만 한다면 모두 이 동그라미를 벗어날 수 없다. 허실을 따라 곳곳에 동그라미를 이룬다. 연습은 느릿느릿 하는 것이 원칙이고 또 조금도 힘들이지 않는 것이 요체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잇달아지도록 한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遼陽의 張通이 明나라 洪武 연간의 초기에 황제의 부름을 받아 서울(南京)로 가던 도중 武當山에서 길이 막혔었는데 그 날 밤 꿈에 한 이인(異人)이 이 권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나는 근년에 이것을 연습했더니 과연 신체가 튼튼해져서 추위, 더위를 모르게 됐다. 이것으로써 생명보호의 방법으로 삼는다면 참으로 이로움은 있을지언정 해로움은 없을 것이다)><池榮石 역>

십 여 년 전, 우연히 손에든 책 속의 한 구절이 나의 인생여정의 마지막 부분을 이토록 강력히 지배할 줄이야. 정년 因緣의 실오라기는 비단 자기 손이 가 닿는 곳에서만 造化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되씹게 한다.

중국무술을 쿵푸(功夫=功扶=工夫)라고 하며 이 쿵푸는 크게 硬拳과 柔拳으로 나눈다. 경권은 일명 外家拳이라고도 하고 또 유권을 內家拳이라고도 부른다. 이 둘은 각각 그것이 추구하는 깊은 뜻으로 해서 성격을 달리한다. 예를 들어서 外家拳의 대표적 무술이 바로 많은 사람의 귀에 그 이름이 익은 少林拳이다. 소림권은 그 인상이 날카롭고 파괴적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지는 온간 묘기로 해서 한창 피끓는 십대들을 열광케 만든다. 비단 그들뿐이랴. 나도 요즈음 李小龍(부르스 리)이 나오는 전기영화 《드래곤》을 보려고 벼르고 있는 참인데, 어떻든 경권으로는 이 소림권 외에도 空手道와 跆拳道 등이 있다.
한편 내가권으로 분류되는 무술로는 태극권, 형의권 그리고 팔괘장을 들 수 있다. 태극권은 이들 셋 가운데서도 적어도 눈에 보이는 한에 있어서 인상이 제일 부드럽다. 흔히 태극권을 놓고서 사람들은 의문을 던진다. 《그처럼 힘이 빠져있는 몸놀림이 어떻게 무술이 되며, 그런 느린 동작이 어떻게 몸을 단련시키는 데에 도움을 주는가? 하고. 이 소박하고 지극히 상식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우리 인간이 갖는 이른바 《상식의 올가미》에서 먼저 벗어날 필요가 있으리라.

긴 것이 짧은 것보다 쓰기 좋고, 剛한 것이 柔한 것보다 힘이 있고, 날카로운 것이 무딘 것보다 파괴적이고, 빠른 것이 느린 것보다 좋은 것이며, 많은 것은 적은 것보다 價値肯定的이란 우리의 통념과 상식은 宇宙를 직선적으로 파악하는 관점에서 얻는 가정적 진리일 뿐이다. 이 우주를 직선이 아니라 円拳的으로 즉, 동그라미의 원리로서 파악하면 앞의 상식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원의 세계에서는 長과 短, 剛과 柔, 빠름과 느림, 많음과 적음 등의 대립적 가치 양상이 相補的관계로 바뀌며, 시작과 끝의 개념은 流轉과 反復의 모습으로 파악된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떠나는 나에게 가장 절박한 생사의 문제도 시작과 끝의 構圖로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흐름》의 한 토막으로서 觀照된다.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한 부모가 있었으며, 내가 지금 여기에 있고, 그리고 내가 죽은 뒤에도 이 지구 위에 남아 삶을 이어갈 후세(後世)들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다. 이 지구에서 태어난 하나의 생명체일 뿐 며 그 생명체가 스스로 건강하고 안전하기를 끝없이 바라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養生》이 갖는 뜻은 인간에게 있어서 宇宙的이다.

태극권을 우리는 흔히 무술로서 받아들이고 있으나 그보다는 더 본질적으로는 양생의 방법이다. 그러나 태극권을 무술로서 보건, 양생의 술(術)로 보건 아무상관이 없다. 태극권이 지니는 뜻에 하등의 가감첨삭이 가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잠시 外家拳이니 內家拳이니 하는 것과 內와 外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가권(=견권)이 얻고자 하는 효과는 골격과 근육, 피부 등 인체의 外在的器管의 단련이다. 이것을 「外功」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 내가권(=유권)은 내장과 호흡과 혈액순환 그리고 대뇌 등 인체의 內在的器管의 순조로운 기능을 촉구해서 <精>, <氣>, <神> 등의 內功을 다지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여기서 태극권의 특징인 모든 몸놀림에 있어서 힘을 뺀다는 점, 천천히 부드럽게 한다는 점, 그리고 하나하나의 몸놀림을 의식하며 한다는 점 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짐작케 한다.

한편 이제까지의 설명에서 자주 나온 <功>의 뜻에 대해서 몇 마디 덧붙일 필요가 있으리라. 功이란 오랜 시간에 걸친 반복연습으로 몸의 움직임이 뜻하는 이상적인 상태로 저절로 나타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반복적 습관의 완성』이다. 태극권에 <五層의 功夫>라는 말이 있는데 태극권 수련에서 5단계로 구분한 숙련의 수준을 가리키고 있다. 태극권은 무력적 쿵푸를 그 궁극적 목표로 삼지 않는다. 무력은 그것이 무력인 한에 있어서 언젠가는 쇠하기 마련이다. 이 우주에서 영원한 것은 스스로 그러함- 즉, 《自然》뿐이다. 그래서 태극권은 어느 의미에서는 육체적 武技가 아니요 심령적 武技다. 立禪이라는 異名이 있을 정도다. 그 움직임은 지극히 조용하고 부드럽고 서두르지 않으며 끊임없이 도도히 흐르는 강물과도 같다. 태극권을 즐길 수 있게 되면 일종의 신비적 미감(神秘的 美感)에 묻힌다고 한다. 이 玄妙한 무예를 창시한 중국사람들은 대륙을 동서로 가로질러, 수 천년동안 변함없이 흐르는 양자강의 또 하나의 이름, 장강을 따서 즐겨 <長拳>이라고 부른다.

태극권과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5년째에 접어든다. <세월이 유수>라는 말이 웬지 新派調같아서 이제껏 의식적으로 쓰기를 거부했는데 요즈음의 나의 생활은 이 표현 아니고서는 제대로 실감이 나질 않으니, 말이란 참으로 묘한 물건이다. 한 주일에 한번 금요일의 태극권 공부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시간이 그토록 행복할 수가 없다. 역시 이 시간을 통해서 인연이 맺어진 젊은 남녀 동지들이 나를 반긴다. 겉보기에는 무술을 하는 이 같이 보이지 않는 항상 웃는 낯인 선생께서 학생들보다 늦게 교실에 나타난 적을 나는 이제껏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병원 관계로 언제나 삼 사십 분 늦게 큰애와 며느리가 교실로 들어선다. 그리고 뒤따라 나의 손녀들, 娥汀이와 修汀이가 얼굴만 먼저 문으로 들어 밀고 안을 살피고 나서 살금살금 발끝을 세우고 들어온다. 나와 함께 연습을 하던 마누라가 반색을 한다. 쉴 핑계를 찾은 행복한 순간이다. 교실 안은 연습하는 사람이 몇이 되든 언제나 조용하다. 다른 무술처럼 기합이 필요치 않고 줄곧 흐르는 물같이 몸을 놀리니 교실 가득히 정숙이 흐를 수밖에 없다. 저마다 다음 품 새를 머리 속에 떠올리며 몸을 놀린다. 그 동작 하나하나에 붙은 이름이 어찌 그토록 시적이며 우아하단 말인가. 백학량시(白鶴亮翅)-흰학이 깃을 펴듯, 수휘비파(手揮琵琶)-비파를 안고 줄을 튕기 듯, 좌람작미(左攬雀尾)-공작이 긴 꼬리를 끌어당기듯, 운수(雲手)-손의 움직임이 마치 구름이 피어오르듯, 해저침(海底針)-바다 밑의 바늘을 살짝 집어 올리듯…….

태극권 품새의 이름에는 동물이 많이 나온다. 중국 무술의 기원은 동한 시대의 도인술(導引術)에서 비롯한다. 導引이란 몸의 屈伸動作을 통해서 사람의 生命의 原動力인 精氣神(=生命力)을 이끌어내고 蓄積하는 方法을 가리킨다. 이러한 養生術은 吐納術 즉 呼吸法과 더불어 진행된다. 토납술이란 오늘날로 말하면 腹式呼吸운동이다. 당시의 名醫 (화타)가 곧 오금, 즉 호랑이, 사슴, 원숭이, 곰, 새 등의 몸놀림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들 척추동물의 움직임에서 얻은 계시를 편성한 몸놀림이 태극권의 품새가 되었으니 동물의 이름과 움직임의 표현이 많을 수 밖에 없으리라. 사람은 척추동물이다. 사람의 동작이 짐승과 점점 멀어져 나가면서 질병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화타가 펴낸 양생법이 바로 그의 《五禽戱》이다.

두어 시간이 어느덧 지나고 저마다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는다. 충족된 시간이기에 아쉬움이 더하다. 가끔 몇이 어울려 소주 잔을 기울일 때가 있다. 어느 때런가. 나는 다정한 젊은 동지들에게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여러분에게 청이 있으니, 만일 내가 나이 일흔이 되어 古稀宴을 벌일 수 있게 된다면 잊지 말고 찾아와 그 자리에 참석한 賀客들을 위해서 나와 함께 太極拳을 해 보여 주지 않겠느냐 》고. 모두들 拍掌歡呼하고 그 날을 期約했다.

이태 전에 대만에 들렸을 때 사온 태극권 책 한권이 지금 책가에 꽂혀있다. 나의 짧은 語文 실력으로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얻는다는 것은 마치 장님이 코끼리 옆구리를 더듬는 꼴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그러기에 더욱 무슨 오묘한 비법이 꼭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아 궁금증을 더하게 만든다. 내 태극권을 예찬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바로 이 책을 손을 들고 뒤적거리는 형국과도 같으니 어찌 보면 이제까지의 長廣舌이 한낱 우스개소리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아 얼굴이 후끈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태극권을 권하고 싶고,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는 태극권을 가르치겠으며,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이하고는 함께 너울너울 태극권을 추고 싶은 마음 누를 길이 없구나. 타이지취앤 띵하오!(太極拳 頂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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