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동휘입니다. 2002년 현재 안양에 있는 관양중학교 1학년입니다. 저는 어려서 아빠한테 태극권을 배운 적이 있으며 지금도 가끔씩 태극권을 수련합니다. 저는 이번에 아빠와 함께 중국에 갑니다. 물론 태극권을 배우려 중국 하남성 진가구에 갑니다. 저는 이 진가구 방문기를 중학교 사회과제물로 제출할 것입니다. 같이 진가구에 가셨던 아저씨들과 형 누나들께 감사한 마음으로 이 곳에 글을 올립니다.특히 상헌이형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상헌이형 고마워~! 그리고 제 사회 숙제를 도와준 지혜누나에게도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혜누나 고마워~! 아버지께서는 아직 모르시지만 제가 글을 쓴 것을 아시면 무척 대견해 하실 것입니다. 내용은 다 아시는 거지만요





**** 아빠와 함께 태극권수련(초등학교1학년) ****

드디어 8박9일간의 긴 여정이 시작되려고 한다. 아버지와 나 그리고26명의 태극권 일행은 중국의 진가구라는 도시로 여행을 간다. 여행 목적은 간단하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태극권이라는 중국무술을 한국에서 가르치신다. 이 참에 그 곳에서 나도 무술 '태극권'을 배우고, 문화재 구경도 하기 위해 간다. 그것이 목적이다.
우리일행의 목적지는 진가구 이다. 진가구 인구는 3000~ 4000명 정도라고 한다. 언어는 순종 중국어다. 종교는 없다. 역사는 태극권의 발생지이다. 명나라 말 청나라 초기에 황하지역으로 산서성 홍동현에서 진복이라는 자가 진씨 일족을 이끌고 하남성 온현 조보진 진가구로 이주한 것이 시초가 되고 있다. 이곳은 현재 세계적으로 유명한 태극권 발생지로 수많은 외국인들이 죽기 전에 한번은 방문하고 싶어하는 태극권의 성지이다. 화폐단위는 위엔이다. 화폐차이는 우리나라와 1:150이다. 즉 우리나라 150원이 중국에서는 단돈 1원이다. 대표하는 것은 바로 태극권 학교이다.
진가구는 아주 더운 곳이기 때문에 짧은 옷이면서 운동을 하기에 간편한 옷이면 좋을 것 같다.
참, 여행 경로도는 이렇다.
한국 인천 국제공항 → 베이징 도착 → 기차를 타고 침대칸에서 9시간을 취침하고 나서 하남성 수도 정주 도착 → 버스를 타고 온현에 도착 → 삼륜차를 타고 진가구에 도착을 함 → 다시 기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옴 →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첫 번째 날...

인천 국제공항에서 우리 일행들을 기다린다. 드디어 아침 첫 비행기를 타고 우리는 중국 베이징으로 향한다. 약 2시간이 지난 뒤, 우리는 베이징에 도착을 한다. 베이징에 도착하고 천안문 광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잡상인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천안문 광장을 구경하고 우리는 또 자금성으로 향했다.

내가 듣기로 자금성은 엄청나게 커서 제대로 구경을 하려면 일주일은 걸린다고 한다. 또 다시 우리는 왕푸징의 신화 서점에 갔다. 그 곳은 지하 1층과 지상 5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 엄청나게 컸다. 우리나라의 교보서점 보다도 크기가 컸다. 왕푸징은 우리나라의 명동과 비슷한 중국 베이징의 번화가이다. 우리는 전취덕이라는 가장 유명한 베이징 오리고기집에 들러서 허기를 채웠다. 또 저녁에는 서커스를 보았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우리 일행은 베이징 서역에서 침대 칸 기차를 탔다. 침대 칸 기차는 너무 재미있었다. 텔레비전에서 보는거와 다르게 직접 경험을 해 보니깐 너무 재미있었다. 침대칸은 상중하로 나뉘어져 있는데 하칸이 가장 비싸고, 중상으로 점점 값이 내려간다. 아버지께서는 무조건 나이 많은 사람들은 하로 보내고, 나는 상으로 보내신다. 나는 짐을 정리하고 숙제도 하고 취침을 했다.




아빠와 함께 자금성에서

두 번째 날...

침대 칸 기차에서 9시간을 보낸 후, 하남성의 수도인 정주에 도착을 한다. 그리고 바로 온현을 지나 진가구로 도착을 한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모든 아이들이 태극권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때부터 난 기가 죽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나를 반갑게 맞아주시는 분이 계셨으니 바로 진병아저씨였다. 보통 다른 친구들은 우리 아버지의 제자, 선생, 친구 이런 관계를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같은 태극인으로써 명장과 친구관계란 것을 기쁘게 즐긴다. 우리 아버지는 진소성선생님의 하나밖에 없는 한국인 제자이시다. 진병아저씨는 태극권을 무지 잘하는 진소성 선생님의 조카뻘이다. 그는 곧 진가구 학교의 장자가 될 것이다. 그 곳에는 진소성 선생님의 아들 진자강아저씨와 진자군 형이 있었다. 그들 모두 유명한 태극권 고수들이다. 도착하자마자 나를 신기한 듯이 쳐다보는 아이들을 보며 얼른 모습을 피하곤 했다. 곧 바로 중국 아이들 왕쯔, 왕쭈어, 수짜짜 등이 차려준 음식을 먹고 배꼽시계를 진정 시켰다. 우리 아버지와 나와 상헌이형 지혜누나 재옥이누나는 진소성 선생님 댁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그곳에는 엄청나게 큰 강아지와 귀엽게 생긴 고양이들이 있었다. 이제 짐 정리를 하고 운동을 하러 가서 나는 19식이란 노가 1로의 압축형이라 할 수 있는 운동을 했다. 진소성 선생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날이 저물었다. 나는 선생님댁에 가서 잠을 잤다. 그런데 나는 너무 더워서 새벽에 잠에서 깼다. 에어컨을 키려고 하는데 에어콘이 고장난 것이다. 너무 괴로웠다. 그렇게 몇 시간을 앓다가 잠이 들었다.



엄청나게 큰 강아지^^ '헤이안'

세 번째 날...

새벽 5시 기상 나는 게임기를 가지고 학교로 향한다. 어른들은 노가 1로를 배우는데 나는 그게 어려워서 배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내가 게임기를 하는데 중국 아이들이 신기한 듯이 쳐다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게임기를 해보라고 줬는데 아이들은 바로 그 게임기를 했다. 그리고 점차 그 아이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축구도 같이 했다. 포켓볼도 치러 가고... 연습을 하는데 갑자기 어느 신문사에서 들이닥쳐서 나보고 시험을 해보라는 것이다. 그 일로 나는 진가구에서 운동하는 한국인으로 알려지게 된다. 또 인터넷 무술 방송사에서도 내가 태극권 하는 것을 찍었다. 옆에서 중국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의 존재가 알려지는 것이었다. 운동을 하고 우리는 낙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용문석굴 이라는 곳도 가봤다. 일본사람들이 그 곳에 있는 문화재들을 많이 발굴해가서 보기는 그리 좋진 않았지만......, 또 유명한 샤브샤브 요리를 먹으로 갔다. 그런데 속이 안 좋아서 그 곳 화장실에 갔더니... 공중화장실이였던 거였다. 나는 아버지한테 문을 지키라고 하고 가서 볼일을 봤다. 시원했다. 이런이런... 그날 저녁 나는 고쳐진 에어컨 밑에서 달콤한 잠을 잤다.


쌍검의 여왕 진계진 노사와 함께

네 번째 날...

어김없이 새벽 5시면 깨우는 아버지와 상헌이형... 그런데 내가 오늘은 너무 피곤한 나머지 아버지한테 난 더 자고 싶다고 말하자. 아버지께서 조금 있다 7시에 밥먹을 때 데리러 온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잠을 더 잤다. 시간이 그렇게 빨리 가는 줄 몰랐는데... 훌쩍 2시간이 다 지나 버렸다. 이제 일어나서 다 챙기고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나는 중국아이들과 포켓볼을 치러갔다. 진자군형과 같이 말이다. 나는 포켓볼을 처음 해봤다. 그래서 너무 못 했다. 창피했다. 하지만 중국아이들은 그냥 웃어 주었다. 진자강아저씨의 부인되는 분은 영어를 할 줄 아신다. 그래서 나의 유창한(?) 영어실력을 발휘해서 그분과 이야기도 하고 그랬다. 오늘은 소가식을 하시는 진립법 아저씨의 세미나가 있다. 그분은 소가식을 아주 잘 하신다. 우리 아버지와 절친한 친구이시다. 게다가 말은 안 통하지만 120%통역인 지혜누나가 아빠의 든든한 외항이 되어준다. 소가식 역시 태극권에서 나온 무술의 일종이다. 여러 질문도 받고 시범도 보이면서 그렇게 시간은 갔다. 그 때 나는 중국아이들과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생년월일도 물어보고... 내가 제일 형이었다. 내가 3일 먼저 태어나서 가장 형이다. 세미나를 하는데 그 체육관안에는 박쥐가 많았다. 그런데 그 박쥐중의 한 박쥐가 나의 발에 오물을 떨어뜨렸다. 기분이 진짜 나빴다. 하지만 그냥 참고 세미나를 꾸준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다시 선생님댁에 가서 잠을 잤다.



용문석굴에서

다섯 번째 날...

어김없이 새벽 5시 기상이다. 졸리고 피곤한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선생님 댁 강아지와 고양이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아버지, 상헌이형, 지혜누나, 재옥이 누나와 또 다시 학교로 향한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중국아이들이 태극권 노가 1로를 연습하는 곳에 가 보았다. 한국 아이들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대부분의 한국아이들도 무엇이든지 선생님이 계실 때만 열심히 하지만 선생님이 계시지 않으시면 절대로 열심히 하지 않는다. 중국아이들도 그랬다. 중국 아이들은 동경추수도 하였다. 동경추수란 씨름같이 서로 서로 다양한 기술을 사용해 가면서 상대를 제압하는 무술이다. 나는 오래 전에 유도를 배워봐서 아이들과 동경추수를 하면 꼭 이겼다. 중국 아이들이 너무 가볍기 때문이다. 중국 아이들이 차려준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나는 아이들과 축구를 하러 갔다. 축구를 마치고 더워서 물을 사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나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중국아이들은 외부인들이 사주는 음식, 선물 등을 절대로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설득해서 물은 겨우 마시게 되었다. 아이들은 다시 자기방으로 가고 나는 우리 일행들의 숙소로 갔다. 나는 축구를 하느라 피곤했는지,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한 2시간쯤 잤나? 벌써 4시가 다 되어있었다. 그런데 작은 문제가 하나 있었다. 진소성 선생님께서 나를 아주 귀여워 해주신다. 그래서 새벽 4시에 내가 19식을 배우러 나가지 않자 운동을 안하신다고 하신 것이다. 내가 오면 하시겠다고 하셨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생각을 하고 부랴부랴 달려갔더니 다행히 별 문제는 없고, 그냥 19식은 진행이 되었다. 19식을 끝내고 나는 다른 일행들과 이야기도 하고 게임기도 하고 놀았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나는 다시 선생님댁으로 향했다. 가서 몸을 씻고 취침을 했다.



아빠의 사부님과 함께

여섯 번째 날...

오늘 아침은 내가 일찍 일어났다. 그냥 눈이 떠진 것이다. 아버지께서 웬일이냐는 듯이 마냥 좋아하셨다. 나 역시도 기분이 좋았고, 우리는 일찍 출발했다. 학교에 있던 일행들이 잘 잤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잘 잤다고 했다. 그날은 우리 어머니께서 싸주신 많은 한국 반찬들을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한국 반찬이라 그런지 매우 맛이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는 먹지 않던 무말랭이 깻잎도 먹었다. 나는 다시 19식을 하러가고 또 중국 아이들과 놀았다. 게임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중국 아이들이 나를 부르더니 모두가 준비한 선물들을 나에게 주었다. 나는 정말 고마웠다. 지금도 그 선물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보답으로 아버지께 아이들이 선물을 주었으니 우리도 신발을 사주자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쾌히 승낙을 하셨다. 그런데 중국 아이들은 또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120%통역 지혜누나가 이것은 나쁜 것이니라고 설득을 하고 아이들에게 신발을 사 주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중국 아이들이 너무 고맙게 여겨진다. 그리고 아이들과 헤어져서 나는 잠을 자게된다. 역시 선생님 댁에서다.


일곱 번째 날

아이들과 많이 놀아서 인지 졸렸다. 하지만 곧바로 출발하였다. 오늘은 아이들과 지낼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나는 바로 가서 아이들과 실컷 놀았다. 그리고 19식을 하였다. 19식을 하면 시간이 금방간다. 나는 아이들과 축구를 보러 갔다. 오늘은 韓(한)中(중) 축구전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축구에 대한 증오심이 많았다. 월드컵 첫 출전을 해서 한 골도 넣지 못하고 대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엄청나게 큰 오륜기도 가지고 오고, 우리는 조그마한 태극기를 가져다 주었다. 약간 기분이 상했다. 그들은 축구를 아주 잘하는 온현 축구팀을 스카우트 해왔다. 우리는 다 아마추어인데... 하지만 열심히 응원을 하면서 즐겁게 게임을 하였다. 결과는 1:0으로 지게 되었다. 참, 중국인들은 텔레비전 기자들도 데리고 왔다. 깜짝 놀랐다. 중국이 이렇게 축구를 사랑할 줄이야... 경기가 끝나고 우리는 페어플레이 정신을 끝까지 보여줘서 중국인들이 크나큰 충격을 받은 것 같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아버지께 오늘은 마지막 날이니 중국 아이들과 같이 잘수 있게 해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괜찮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중국 아이들과 잠을 자려고 한다. 그런데 중국 아이들은 다 잠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펑~!'소리가 나서 무서워서 깼다. 그래서 나는 나와서 하는 수 없이 선생님 댁으로 향했다. 나는 또 다시 잠을 잤다.


여덟 번째 날...

중국 학교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나는 진가구학교에서 가까이에 있는 양로선 사당에 갔다. 나는 그 곳이 집인줄 알았다. 그런데 얼핏 보기엔 아니어서 시시한데구나하고 생각하고 발길을 돌리는데... 아버지께서 말씀을 하셨다. 이게 끝이 아니라고 그 뒤에 숨겨진 문이 있었다. 그래서 들어 가봤더니 많은 건축물들이 있었다. 양로선 사당을 뒤로하고 진조비 능원에 갔다. 그곳에는 무덤이 있었다. 진조비라는 분의 능이었다. 이제 짐을 챙기고 학교로 갔다. 나는 진자군 아저씨가 운전하는 경운기를 타고 갔다. 이제 가려고 한다. 그 학교에서는 나를 좋아하는 여자애 '수짜짜' 라는 아이가 있었다. 아버지께는 수짜짜에게 잘해주라고 늘 당부하시지만 가끔 아저씨들이 놀리기도 하고 솔직히 나는 그 애가 별로 예쁜 줄도 모르겠고 해서 수짜짜 앞에서 아는 체하시지 말아달라고 아버지께 부탁드렸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그 약속을 지키시지 않고 수짜짜를 버스 위로 타게 해서 나랑 악수를 하게 하려고 했다. 나는 왈칵 울어버렸다.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수짜짜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렇게 하고 우리는 또다시 관광을 하러 갔다. 우리 일행은 정주로 가서 중국술과 중국차를 샀다. 그리고 또 기차역으로 갔다. 또 침대칸 기차를 타고 우리 일행은 취침을 했다.



중국 친구들과 함께

아홉 번째 날...(여행 마지막 날...)

중국의 베이징에 도착을 했다. 우리는 첫 번째 날의 가이드 누나와 만나서 음식도 먹고, 관광도 했다. 그리고 공항으로 갔다. 그런데 중국 비행기 사정이 안 좋아서 2시간 정도 연장이 되었다. 도착할 시간에 출발하는 격이 되었다. 우리는 무사히 대한민국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을 하였다. 나는 시원섭섭한 마음을 뒤로하고 집에 도착하였다. 힘들 때 보고싶던 어머니, 동생, 귀여운 우리집 강아지 단비, 한비를 만났다. 그날 하루는 그렇게 끝이 났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99-3 신한국빌딩(스타벅스) 지하, 교대역6번출구 삼풍아파트방향 200미터   문의:02)592-5911 H.P:017-208-5911
All Contents Copyright 2003 진식태극권대한민국총회  사업자등록번호:214-90-18279   관리자이메일:tai-ji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