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인 총회 여학생 회원이 태극권과 관계된 책이라며 「몸을 통한 연기훈련」을 가져온 적이 있다. 이 책은 타 대학에 다니는 친구의 학교 수업 교재로 이 여학생도 이 책을 빌려 보고 태극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햇다. 물론 지금은 우리도장에서 열심히 수련하는 학생들 중의 하나로 태극권에 빠져 있다.
이 책은 연기를 위한 몸의 훈련 방법으로 태극권이나 동양무술의 수용을 권유하는 내용으로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책 인 것 같아 연기에는 문외한이지만 흥미 있게 읽게 되었다. 문득 몇 년 전 예술의 전당 10주년 기념행사로 초청된 대만 무용단 Cloud Gate Dance Theatre 의 행초(行草)라는 공연이 생각난다. 서예와 무용, 그리고 무용과 태극권의 접목이라는 참 신선한 발상의 공연이었다. 이들은 벌써 오래전부터 태극권을 무용에 접목시켜 세계적인 무용팀으로 명성이 높다. 나도 그 때 그들의 공연에 많이 심취되었나 보다. 평생 처음 공연 포스터를 구입해보았으니 말이다. 이 때 포스터가 매진이 되어서 아주 어렵게 게시되어 있던 것을 구입하였다. 지금도 우리 도장의 한 곳을 이때 구입한 포스터가 장식하고 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많은 태극권 선생들은 태극권을 가르칠 때 마치 춤을 추듯이, 춤을 지도하듯이 수련생을 지도한다. 수련생들은 아무 뜻도 모르고 무작정 선생의 동작을 따라 수련을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지도하다 보면 수련생들은 도대체 이 동작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 동작을 어떻게 사용하게 되는지, 왜 이렇게 하는지 답답해하면서 종종 질문을 한다. 이 때 엄격한 선생들은 결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주지 않고 차차 알게 되니 조급해하지 말고 그냥 따라 하라고 한다. 물론 그 선생이 그 내용을 몰라서 대답을 해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또한 선생 본인이 예전에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너도 겪어 보라는 식의 대응 또한 결코 아니다.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학생을 사랑하는 선생은 결코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선생님이 무작정 따라하라고 할까? 이유는 지금 배우고 있는 동작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그 동작에 대한 의미 내지 무술적 내용을 가르쳐 주게되면 배우는 사람은 틀림없이 몸을 긴장되고 동작은 굳어지기 때문이다. 태극권을 배우면서 선생님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용어가 있다. 바로 “방송” 이다. 방송이란 “몸에 힘을 빼서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상태를 유지하는 것” 이다. 외형을 유지하면서도 내적으로는 부드러운 상태 즉, 쓸모없는 힘은 빠져 있지만 외부자극에 대해 원활하게 반응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방송은 태극권을 배우는 사람이 풀어야할 평생의 화두이자, 태극권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이다. 바로 이점 때문에 선생들은 처음 기초를 확립하는 단계에서는 결코 답을 주지는 않는다.
과거에 진소성선생님께 이와 관련된 내용들을 질문한적이있다. “투로의 용법은 언제쯤 배울수 있는가? 그리고 투로를 할때 용법을 생각하면서 수련을 해도 괜찮은가?” 였다. 이때의 진선생님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수련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용법만을 배우려 덤빈다면 그사람은 태극권이 아닌 소림권(외가권)이 되고말것이다. 따라서 투로를 통해 요결을 먼저 지켜나가는 것을 습득해야 한다. 동작 동작마다 이동작의 용법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한다면 요결을 그르치기쉬우며 몸까지 경직되게된다. 용법보다는 요결을 생각하며 투로를 연습하라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나도 가능하면 그 동작의 뜻을 잘 가르쳐 주지 않는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도장에서 학생들끼리 배운동작을 가지고 자기들끼리 그동작에 대해서 해석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때 그 동작에 대한 해석방법을 보면 그 사람의 무술경력을 바로 알 수 있다. 태권도를 배운사람, 합기도, 유도, 소림권, 공수도 등등 모두 이전에 선행되었던 즉, 자기가 배운적이 있는 무술을 가지고 태극권의 동작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런식의 수련은 몸에다 옷을 맞추는 것이 아니고 옷에다 몸을 맞추는 본말이 전도된 수련이 되고 말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배워온 경험으로는 이런식으로 태극권을 수련해서는 참다운 태극권의 뜻을 얻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한다. 나역시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이다. 많은 태극권 수련생들 역시 현대인의 습성인 빨리빨리 병에 너무 적응 되어 있는 것 같다. 태극권의 진정한 의미보다는 한 동작에 담겨있는 내용을 빨리 배워야 겠다는 욕심이나 빨리 강해져야 겠다는 조급함, 내가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등이 문제 인 것 같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사람들의 격언을 다시금 마음에 담아보면 어떨까 한다. 태극권을 올바르게 배우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처음 태극권의 기초를 확립하는 단계에서는 태극권을 무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태극권은 무술이 아니고 마치 우아한 춤이라고 생각하고 연습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이러한 단계를 거치고 나서 어느 정도 품격이 다듬어지고 난 다음 무술로서의 태극권을 배워야 참다운 태극권을 몸에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