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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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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규의 2004 진가구 연수기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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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 진가구의 하루하루(1)
호박죽과 꽈배기, 1식8찬
전회에 예고한대로 본격적인 수련이야기를 하기 전에 하루하루의 생활에 관해서 적어보자. 우선 음식인데, 우리가 식사를 한 식당은 기숙사에 붙은 식당이 아니라 학교안에 있지만 별도로 영업하는 요리집이었다. 2년전 음식으로 고생한 분들이 있어서인지 나름대로 신경써서 내놓은 1식 8찬으로 느껴졌다. 보통 보는 중국음식에 비해서 한국사람이 좋아하는 마늘이 들어간 요리가 많았고, 탕수육이라든가 고추잡채라든가 우리들이 익숙해할만한 음식들이 자주 보였기 때문이다.
식당 앞으로 바라보이던 동네 할아버지. 태극권의 고수일지도 모른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것은 "산요"라는 진가구 특산품으로 만든 달콤한 요리였는데, 이곳은 디저트로 나올법한 단 음식도 주요리로 상에 올린다. 꿀에 절인 대추와 산마같이 무미의 맛이 나는 산요, 그리고 두 가지 색깔의 체리가 주재료인 산요요리는 내가 좋아해서인지 자주 상에 올랐다. 그외에도 우리나라 감자탕에서 고추장만 뺀 듯한 돼지갈비탕, 관장님이 좋아하시던 황하 생선탕, 생선튀김, 모든 분들이 좋아하시던 계란과 토마토 요리(조관장님, 이거 이름 까먹었어요. 맛있었는데) 등등 미량누나의 말대로 나에게는 매찬이 진수성찬이었다. 돼지갈비탕은 혼자남아서 남은 국물을 홀홀 마시고 있었던 적도 있다(--; 다들 모르셨죠?).
하지만 모두가 그런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중국집 요리와는 달리 본토 중국요리는 향과 맛이 무척 진하기 때문에 담백한 한국음식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그다지 친하게 느껴지는 요리가 아니다. 그중에도 한국분들이 특히 드시기 어려워하시는 것이 독특하고 비릿한 향이 나는 "샹차이"(향채의 중국발음인듯)다. 오기 전에 당부해서인지 대체로 샹차이를 빼고 음식이 나왔는데, 가끔 돼지갈비탕국 같은게 나오면 아무래도 고기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위에 샹차이를 수북하게 뿌려서 나온다. 그러면 작은 그릇 하나에 다 덜어놓는데, 내가 별일없다는 듯이 집어먹자 전사장님은 "뙤놈"이라고 불러주셨다. 사실 지난번 중국왔을 때도 그런 말 들었는데 아무래도 전생에 중국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음식이 다 입맛에 맞는건 아니어서 박선생님은 약간의 배탈이 나셨고, 무엇보다 매일 점심저녁으로 8찬씩 달고 시고 짜고 갖가지 맛과 향이 진한 음식이 나오자 나중에는 다들 입에 물려 하셨다. 매일의 운동량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날이 가고 지치기 시작하면서 잘먹던 나조차도 담백한 밥과 찬이 그리웠다. 그래서인지 뒤로 갈수록 아침식사의 인기가 높아졌다. 왜냐하면 아침식사는 중국식 빵(꽈배기나 넓적한 밀가루 빵)에 호박죽이나 다른 죽종류와 함께 담백새콤한 숙주나물 볶음이나 야채류의 가벼운 반찬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식사때면 으례 빵 한두개씩 챙겨가는 회원님들을 볼 수 있었다.
자주갔던 과일가게. 파라솔에 씌여진 "와하하"는 대표적인 생수회사다.
식사 외에 과일은 태극권학교 앞 노점상에서 주로 사다먹었다. 속이 노란 능금(사과보다 작다), 포도, 자그마한 자두(내가 특히 좋아했다), 바나나와 토마토 등이었다. 과일을 고르러 가서 두 종류의 토마토를 놓고 고민하는 덕승형에게 "이거는 요리용 토마토고 우린 그냥 먹을거니까 이걸로 사세요"하고 골라드렸더니 기대이상으로 대견(?)해 하셨다. 요즘 남자들은 이런거 기본인데 덕승형은 다른걸로 사모님께 사랑받나 보다. 하긴 안마만 해드려도 형수님이 살살 녹을 것 같기도 하다. 덕승형의 안마솜씨에 관해서는 뒤에 또 이야기하자.
덕승형과 토마토를 산 길건너편 과일가게가 보인다.
진가구 장날
붐비는 장터.
지내던 날 중 하루(목요일로 기억된다)는 큰 장이 섰는데, 아마 태극권 학교 옆 도로가 이 근동에서는 메인 스트리트인 모양이다. 평소에는 너무나 한적해서 여름날 나른한 황토먼지만이 오가는 게 아닐까 싶은 거리에 이날만은 엄청난 인파가 붐볐다. 오후에 수련이 없는 시간을 틈타 끝에서부터 끝까지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전사장님, 박선생님, 조관장님과 짝을 이루어 엉터리 하드(커버와 속이 전혀 달랐다)를 한개씩 물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는데, 노점 이발관, 발가벗은 꼬마들, 간이 냉면점, 강아지와 고양이 새끼들, 인파를 헤치고 지나가는 자전거와 오토바이들 같은 보기드문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하드 흥정하는 우리 일행. 열심이다.
문제의 엉터리 하드.
중국에 와서 깜짝깜짝 놀라는 것이 자동차 경적소리다. 사람들이 차가 와도 모른척 자기할일을 하기 때문에 차들이 쉬지 않고 경적을 계속 누른다. 근데 그 경적소리가 또 엄청 시끄러워서 방에 누워있다가도 벌떡 일어날 지경이다. 시장통을 헤치고 지나가는 트럭이나 버스의 모습은 그 자체가 고문이다. 그런데도 태연한 얼굴로 자기할일들을 하는 중국사람들을 보면, 얼굴 생김새는 달라도 사고방식이나 문화는 참으로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중국을 오래 다니셨던 내가 아는 선생님은 그런 말을 했다. "중국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나 아프다, 나 못살겠다 해도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는다. 죽어도 별로 상관도 안한다. 자기가 살아남아야 한다. 우리나라야 '어디 아프냐'라고 한번 물어주기라도 하지만, 중국은 그런 거 없다." 생명력... 중국인의 강인하고 거친 생명력 같은 걸 장터에서 느낄 수 있었다.
노상 이발관.
기름짜는 할아버지.
냉피. 밀가루를 얇게 밀어 넓적하게 썰어서 담가먹는 면 같았는데 먹어보진 않았다.
아이들에게 냉피를 먹이는 아버지.
속옷을 고르는 진가구 처녀들.
칼가는 풍경.
애들과 동물들.
중국호떡. 우리나라 호떡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다.
태극권수련과정
본격적인 수련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우선 태극권 수련의 종목 및 시간은 다음과 같았다.
새벽 5시 30분부터 2시간 가량 - 진식태극권 노가1로 교정(진소성 노사)
오전 10시부터 1시간 - 진식태극검 교정(진병 노사)
오후 4시부터 2시간 - 진식태극권 신가1로(진병 노사)
태극권 수련하는 소녀들.
새벽에 기상해서 나가면 대개 진소성 노사께서 먼저 일어나 계시기 일쑤였는데(사실 나는 매일매일 새벽에 거의 꼴등이었다--; 밤에 권철씨랑 늦게까지 소근댔기 때문에...), 첫날 뵈었던 진소성 노사의 모습은 소탈한 성품을 그대로 보여주셨다. 한창 태극권학교 보수공사를 감독하고 계신 와중이셔서 늘 흙이 뭍어있는 티셔츠와 반바지에, 머리는 베토벤 스타일, 플라스틱 슬리퍼를 신고 보여주시던 노가1로를 나는 아마도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인간적인, 자연스러운, 매일매일의 일상과 다름없는, 둥글고 원만한 태극권 동작들.. 둘째날은 사모님한테 혼나셨는지 아주 말쑥하게 머리도 빗어넘기시고 깨끗한 새 옷에 양말과 운동화를 차리고 나오셨는데 그 모습도 정감있었지만 어쩐지 나는 첫번째 날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문득, 태극권을 무협지에서 먼저 접한 사람들이 갖게 되는 태극권에 대한 환상, 중국영화에 범람하는 깔끔한 약속대련의 이미지들과 추수니 발경이니 하는 태극권 대련기술의 신비화, 이런 것들이 그야말로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극권의 깊이는 장풍을 날리고 무협지처럼 깔끔하고 무언가 있을법한 신비로움에 있는게 아니라, 정신을 이완하고 요결을 거울삼아 세밀하게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연과 하나되는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황토를 기어가는 지렁이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긴 역사를 살아남은 데 있는 게 아닐까. 할아버지에서 아들로, 손자로 누대를 걸치면서 조금씩 조금씩 이론과 실기에 깊이를 더해 온 이 무술의 심오함은 황토가 날리는 땅을 일구고 산적과 주변 마을의 침입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 온 데에, 그리고 문화혁명이라는 가혹한 정신적 탄압 속에서도 살아남아 오늘날 이곳에 있다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진소성 노사 뿐만 아니라 진세통 노사나 동네 촌로들은 하나같이 무술의 고수인 티를 내지 않았고, 시골 할아버지와 다름없는 남루한 의복 속에 그 도(道)와 락(樂)을 담고 있었다. 중국 전통의상을 차려입지 않아도, 폼나는 당화를 신지 않아도, 매일매일의 생활 속에서 살아있는, 자연스러운 이 전통무술은 같은 투로임에도 어쩐지 북경이나 정주 시내에서 만난 깔끔한 도회식 태극권과 느낌이 달랐다. 할아버지께서 식사때 진병선생에게 진가구에서 태극권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몇 퍼센트나 되나 하고 물어보았는데 한 10%정도쯤 된단다. 그러니까 진가구 사는 주민 대부분이 태극권을 알고 일상생활 속에서 수련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태극검을 서로 가르쳐주는 소년들.
일전에 본 진정뢰 선생의 인터뷰에는 태극권의 생활화에 관해서 이런 문답이 적혀 있었다.
문: 대부분의 수련생들이 가족과 직장의 제약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조언을 한마디 해주신다면?
답: 아무리 바쁘더라도, 최소한 매일 20분은 수련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태극권에 얼마나 마음을 두느냐에 있다. 즉, 정상적인 수련을 할 수 없더라도, 항상 태극권을 마음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항상 태극권을 생각하고, 그 원리를 이용하도록 한다. 먹거나, 걷거나, 우리의 모든 행위가 곧 태극권 수련이 될 수 있다. 나에게 많은 시간과 넓은 공간이 주어진다면 투로의 전체를 행할 수 있겠지만, 여건이 그렇지 못하다면 일부 동작만을 행하면 된다. 일할 때 정상적인 수련은 불가능하겠지만 참장의 자세로 서류를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책상에서 글을 쓸 때, 의자를 사용하지 않고 마보를 취할 수도 있다. 하루의 일상에서 피곤하다면, 방송의 원칙을 적용하여 느슨하고 이완된 상태로 있을 수도 있다.
태극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수련하고 싶을 때 뿐만 아니라, 언제 어느때고 늘 태극권과 당신은 함께 해야 한다. 우리가 마을에서 농사지으며 자랄 땐 많은 일 때문에 수련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어디서고, 어느 때고, 어느 동작에서건, 삽으로 땅을 팔 때나, 쟁기질 할 때나, 목공을 할 때나, 물건을 들 때나 모든 동작에서 태극권 신법을 이용하였다. (문답끝)
옮겨적으면서도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글이다. 태극권의 생활화, 태극권의 체화, 얼마나 단순하고 명쾌하면서도 실천하기는 어려운 명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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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하기] 2004-11-22 18:5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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