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식태극권 대한민국 총회 & 진가구 태극권 대한민국 분교
 
 
 
     

  이재진
  ■ 태극권의 의념에 대한 정신의학적 고찰
  

관장님이 자꾸 글을 쓰라고 하시다가, 최근 '의념(意念)'에 대해 써보라고 하시길래, 무리라고 생각했으나, 나름 적어보려합니다. 저는 권법에 대해 그다지 학구파가 아니고, 따로 이론을 공부한 적이 없기 때문에, 제 개인적인 소견에 직업적 관점을 더하여 쓰는 것임을 양지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알기로 내가권의 '의념'이란 것은, 쉽게 말하면 마음, 생각이나 동적인 이미지 같은걸 말하는 것 같습니다. 권법을 익히는데 있어나, 건강을 관리하는데 동양에서는 신神(혹은 意) 기氣 정精 세가지 요소를 말하는데, 이 중 '마음'에 관한 것인 듯 합니다.

권법 수련에 있어서 마음(意念)이란, 조그맣게 정의하면 일종의 이미지수련법을 말합니다. 팔이 어딘가에 걸쳐져있는 듯, 정수리가 당겨지는 듯, 공을 들어올리는 듯하라는 식으로, 여러 도장에서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다보면 들을 수 있는 일종의 요령들입니다. 이런 조그만 의념들은 그 자체가 일종의 진리는 아니지만, 오랜 스승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게다가 각 제자의 현 수준에 맞는, 아주 소중한 비급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조금 더 의념의 의미를 넓게 보면, 내공(內功)이나 운기(運氣)에 대한 전신적인 이미지수련요령을 말합니다. 단전에서 끌어올리라는 등, 양발로 뿌리내리라는 등, 호흡은 어떻게 하라는 등 말입니다. 전 이 내용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고, 아직 수준미달이기에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내공에 대한 의념을 나름 서술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각자 참조하여도 무방하겠습니다만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내공이나 운기라는 것은, 한 사람이 장기간 오래 수련하여야 느낄 수 있는 것이고, 그로인해 천금같은 의념이 몇가지 생겨나는 것이며, 타인에게 가르치려해도 제자의 수준이 미천하다면 전혀 소용없는 것일 겁니다. 그러므로, 그 진실된 이론이 생겨나고 전해지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을 건너뛰고, 의념의 의미를 더 넓히면, 그저 마음가짐, 감정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의 태극권의 의념에 대한 의견은 이 부분입니다. 간단히 말해, 태극권에서 필요로하는 마음가짐과 기분은, 평온하고 긴장하지 않되, 집중을 유지하는 상태라고 봅니다. 온 몸을 방송하는 것이 태극권 수련의 최고 요결 중 하나인데, 제 생각엔, 마음도 방송이 된다고 봅니다. 간단히 말해 긴장을 풀고 편하라는 것이지만 이 것이 절대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의학적으로 신체에 자율신경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율신경계는, 사람이 어떤 자극,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코르티졸이라는 스테로이드 호르몬과 아드레날린이라는 교감신경자극 호르몬을 뿜어내서, 근육을 수축시키고, 맥박을 빠르게하고, 면역기능을 저하시키는 등의 전신적인 반응을 취합니다. 그로인해, 더 빨리 도망칠 수 있도록 만드는 겁니다. 위험한 육식동물이 나타나면 도망치기 좋게 만들어주려는,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메커니즘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사는 인간에게는 부작용이 많습니다. 현대 인간들이 직장이나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근육을 수축시키고 혈류량을 늘려봐야 아무런 도움이 안됩니다. 그리고 현대의 스트레스는, 사냥이나 천적처럼 한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은은히 지속됩니다. 그래서 현대의 사람들, 특히 열심히 사는 한국사람들은 자신이 자율신경각성상태에 있다는 것을 대부분 모르고 지냅니다. 퇴근할 때쯤이면 피로감을 느끼면서도 온 몸에 신경이 각성된 상태(교감신경항진)을 본능적으로 느끼는데, 그러면 '내가 자율신경항진상태구나'라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술이 땡기는 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본능적으로 신경을 이완시키는 약물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항시 지나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으며 신경각성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경의 이완, 마음의 방송이 필요한 것입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이런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은, 그냥 가만히 놓아두면 됩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20~30분 있다보면 마음은 서서히 가라앉습니다. 하지만 이게 어렵습니다. 사람은 각성되어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에 본능적인 불안감이 있기 때문에, 계속 어떤 생각을 이어가고, 어떤 활동을 좇으려 합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기공수련 뿐 아니라, 요가, 좌선, 108배, 사우나, 목욕탕, 각종 운동들을 통해서 그런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걱정이나 생각을 하지 않고 육체적 활동에 매달리는 것이, 가장 인기있고 간편한 마음 이완의 방법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무념무상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무방하지만, 그게 어렵기 때문에 다들 나름의 무언가를 하며 마음을 이완시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마음을 이완시켜야 하는가? 이 사실은 당연한데도 경시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긴장된 상태에서는 몸도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게 당연합니다. 흥분하면 온 몸의 근육이 굳어지고, 원시적인 달리기나 휘두름이라면 몰라도, 섬세한 작업을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각종 프로의 세계, 스포츠나 시합에서, 상대방을 자극해서 흥분시키는 것은 흔히 벌어지는 기술입니다. 아이들이건 어른이건, 무술 수련을 아무리 오래해도 지나치게 흥분하면 마구잡이 싸움을 하고 헛발길질을 합니다. 사람이 최상의 퍼포먼스를 보이려면, 마음은 차분해야합니다. 이완시키되 집중해야합니다.

이완을 강조하면, 마치 완전히 풀어진 상태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즉 마음의 이완을, 의식의 이완 혹은 멍때림, 해리 상태 등으로 착각합니다. 모두들 수련을 하느라 투로를 돌다보면,  멍해져서 중간 과정을 빼먹거나 되돌리는 실수를 할 때가 있을 겁니다. 이것은 갑자기 너무 이완되어 집중을 잃었을 때의 현상입니다. 즉, 신경은 이완시키되, 의식은 집중시키는 것이 내가권에 필요한 의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중하지 않고 멍때리면 자연스레 요결이 흩어집니다. 방심하면 입신이나 방송이 되지 않는데, 인간은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기립보행을 하는 척추동물입니다. 태극권 요결을 끊임없이 염두에 두지 않으면 몸통과 사지 근육의 긴장은 필연적입니다. 

이완하되 집중하는 것은, 여러 마음 수련법의 공통입니다. 좌선이나 명상, 요가 등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태극권에서는 한가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태극권은 무술이라는 점입니다. 아무리 혼자 연습하더라도 이 기술이 상대를 공격한다는 생각을 할 때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게 됩니다. 이 실수가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발경입니다. 태극권 발경은 방송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이 발경으로 눈 앞에 누굴 가능하면 세게 때려야겠다고 상상하는 순간 마음의 방송이 어려워집니다. 이 부분이 제 의견상 태극권의 특징이자 심오한 모순인 것 같습니다. 즉, 더 세게 치려면 오히려 자비로워야 한달까요.

일본의 베가본드라는 만화에 보면, 당시 일인자로 알려진 노년의 무사가, 몇몇 젊은이가 격하게 도전해오는 것을, 부드러운 표정과 태도로 톡톡 쳐서 상대의 죽도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물론 만화긴 하지만, 배울 부분이 있습니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평화도 중요합니다. 태극권 노인에게 도전했던 최영의 일화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많이들 수련하는 진식태극권의 엄수굉권을 생각해봅니다. 관장님께서 알려주신 요령이, '바람개비날리기' 혹은 '두꺼운 책 찢기' 였습니다. 이 의념은 조그맣게 생각하면, 오른주먹을 날리면서, 동시에 왼손도 뒤로 빠진다는, 좌우를 조화시키고, 전신의 힘을 쓰라는, 일종의 기술적 요령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이 의념의 묘는 더 크게 보면, '사람을 때리는게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저 의념으로 엄수굉권을 수련하면 전혀 다른 느낌이 됩니다. 문득 '도대체 이래서 어느 세월에 사람을 칠 수 있나? 말도 안된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하다보면 조금씩 느낌이 옵니다. 제 나름 감동적인 순간들이었습니다.

사람을 때린다는 것은, 그저 상상으로 그친다해도 매우 격렬한 것입니다. 발경은 본질적으로 폭행이고, 투로 연습이라해도 이 주먹 끝에서 누군가 맞는다고 상상하면, 본능적으로 등과 팔이 긴장됩니다. 다른 무술이라면 이런 상상과 미세한 긴장이 별로 해 될 것이 없으나, 방송을 기본으로하는 태극권에서는 마이너스가 됩니다.

이런 생각들은 한창 시기의 젊은이들, 특히 20대의 남자들에게는 탁상공론이요, 어이없는 발상으로 들릴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남을 때리는 걸 목적으로 하는 무술 치고 모순입니다. 이런 모순을 극복하고 수련한다고 해서 태극권이 다른 무술보다 더 강력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태극권은 태극권일 뿐입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을 방송시키고, 요결을 갖춰 공부를 쌓아나가면서, 끊임없이 내 심신이 성장해가는 걸 발견하는 기쁨은, 다른 어떤 무술이나 스포츠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도장에 숭덕광업(崇德廣業)이라고 걸려있습니다. 도대체 德과 무술이 뭔 상관이 있는가 싶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양무술 도장에는 꼭 도덕적인 내용의 현판들이 걸려있습니다. 요식행위나 인테리어가 아니라,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하 맹자의 공손추3장에 나오는 내용을 덧붙입니다. (왠 맹자를 읽냐?라고 물으신다면, 관장님께서 오래 전에, 꼭 고전을 읽으라고 하셔서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되었습니다) 

: 마음(志)은 기(氣)의 장수요, 기는 몸 안에 가득 차 있는 것이니, 마음이 중요하고 기는 그 다음이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음으로써 기의 난폭함을 없앨 수 있다.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야한다. 호연지기란, 한마디로 말하긴 어렵지만, 가장 크고 강한 기로서, 의(義)와 도(道)가 없다면 부족해진다. 호연지기는 의(義)를 쌓아서 서서히 되는 것이지, 한순간에 되는 것이 아니다. 늘 마음에 호연지기를 길러야함을 기억하되, 바로잡으려하지도 말고, 마음에 잊지도 말고, 조장하지도 말라.

[인쇄하기] 2020-01-08 22: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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