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와 태극권
1999년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슬로우 씨티 운동이 이제는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뉴스에 아시아 최초로 청산도, 담양, 장흥, 증도를 중심으로 우리나라도 slow-city에 가입했다는 뉴스를 접하였다. ‘빨리 빨리’를 외쳐대는 현대사회의 fast 문화에 대항해서 느리게 사는 삶을 원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느리게 사는 삶이란 단순히 속도만을 의미 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 환경, 시간, 그리고 우리 자신을 존중하며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을 영유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이러한 슬로우 운동의 단초가 된 것은 바로 글의 제목이 된 맥도날드에서 시작되었다.1986년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그레베 인 키안티 (Greve in chiantti)에서 시작된 식생활 운동인 슬로우푸드 운동이 시발점이 된 것이다.
슬로우푸드 운동은 미국의 세계적인 햄버거 체인인 맥도널드의 '패스트푸드'에 반대해 일어난 운동으로, 맥도널드가 이탈리아 로마에 진출해 이탈리아 전통음식을 위협하자 미각의 즐거움, 전통음식 보존 등의 기치를 내걸고 식생활 운동을 전개되었고 이것이 여러 분야로 발전하여 느리게 사는 삶을 지향하는 문화로 까지 발전, 바야흐로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디지털 유목민이라는 별칭을 얻은 ‘빨리빨리’의 원조이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부흥을 일으킨 나라 - 대한민국에도 요사이 웰빙 바람을 타고 이러한 슬로우 문화가 크게 번지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격렬한 운동을 선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운동에도 역시 이러한 슬로우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격렬하게 운동을 해야만 몸에서 땀이 많이 나게 되고 그럼으로써 몸에서 칼로리가 더 많이 소비되고 결과적으로 몸에 좋은 것으로 대부분 사람들은 생각한다. 이러한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 볼 때 느리게 부드럽게 어떻게 보면 흐느적거리기조차 하는 태극권은 분명 성에 차지 않는 운동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밝혀두고자 나의 경우를 실례로 들어 본다.
2001년 2월 중국 하남성의 태극권 발생지라는 진가구에서 진소성선생님께 배사(정식제자가 되는 의식)를 받고 첫 수업을 받을 때 이야기다.
나는 어려서 축구를 좋아했고 한 때는 학교 대표로 대회에 출전해 본 경험도 있으며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소림권을 10여년이상 수련을 한 경력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경럭에서 보듯이 나는 체력면에서 만큼은 어느 정도 자신을 하고 있었다. 특히 아무리 무더운 여름날에도 축구시합을 하고난 뒤 땀을 흘리는 경우가 거의 없어 친구들로부터 “사람도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던 기억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러 선생님께 태극권도 수련한터라 그 당시 정말 겁 없이 진소성선생님의 지도를 받을 준비를 하였다.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진소성선생님께서 전에 배운 태극권 중 노가 1로를 해보란다. 그래서 정성껏 노가 1로를 시작하니 몇 동작을 보시더니 그만 하라고 하시며 오늘부터 노가 1로를 새로 배우라고 하신다. 그러시며 노가 1로의 기세, 금강도추 두 동작을 보여주시며 오늘 수업의 진도는 여기까지라며 따라하라고 하신다. 나는 금강도추까지 따라 했다. 다 아는 동작이며 어떻게 보면 내가 배우던 태극권보다 너무 단순해 보여서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선생님께서는 조금 더 천천히 몇 번 다시 해보라고 하신다. 나는 이미 아는 동작이라 별문제 없이 간단히 보여드렸다. 진선생님께서는 고개를 갸우뚱 하시더니 갑자기 외투를 벗으시고 나에게 다가오신다.
선생님께서 나에 몸에 손을 대시며 나의 고관절을 잡으시며 자세를 조금 낮추고 천천히 나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다. 이렇게 두 동작을 10분정도 훈련을 시키시니 나의 온몸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너무 힘이 들고 다리가 마비되는 것 같아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 때가 2월이니 이곳 진가구는 한겨울이고 게다가 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 곳이라 움직이지 않으면 한기가 드는 곳이다. 한 여름에도 땀을 흘리지 않는 내가 한 겨울에 온 몸에서 땀이 흐르는 진기한 경험을 하였다. 그것도 단 지 두 동작을 가지고 천천히 10분 정도 움직였는데 말이다. 물론 이러한 진소성선생님의 지도 방법은 분명 태극권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지도방식이지 일반인을 위한 지도방식은 아니다. 이 이야기를 쓴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태극권이 천천히 부드럽게 힘이 들지 않는 보건체조와 같은 운동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알려주고 싶어서이다.
그러면 패스트 문화에 대변하는 슬로우 문화운동으로서의 태극권의 활용도에 대해서 알아보자.
태극권은 노약자나 환자들에게 회복 운동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 노약자나 환자들에게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운동이나 심하게 뛰는 운동은 불가능하다. 이런 경우에는 천천히 부드럽게 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 분들을 위한 운동으로는 태극권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태극권은 천천히 몸을 움직임으로써 신체를 단련한다. 태극권은 동작들을 힘을 빼고 부드럽게 천천히 반복하여 아주 느리게 수련을 한다. 이렇게 수련을 하면 몸에 무리도 없이 많은 운동효과를 볼 수 있다.
태극권의 특징은 동작과 호흡을 일치시켜 물 흐르듯 동작을 이어나감으로써 心身合一(몸과 마음을 일치)을 시킨다. 이럴 경우 몸의 신경계통과 근육계통이 부드러워지면서도 강하게 된다. 그리고 온몸을 계속 부드럽게 비틀며 이어지는 전사경의 동작들은 우리 몸에 숨어 있는 근육까지 튼튼하게 하고 몸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하체를 강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렇게 몇 개월 정도 수련을 하다보면 혈액순환과 신경전달이 원활하게 되어 성인병에 많은 도움이 된다.
또한 여러 매체에서 태극권이 현대인의 스트레스해소에 가장 좋은 운동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무슨 이유 때문에 태극권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될까? 태극권은 상허하실 운동이라는 이야기를 자주한다. 즉 상반신은 부드럽게 이완시키고 반면에 하반신은 견고하고 튼튼하게 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이 상허하실운동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트레스는 우리말로 이야기하면 화병이다. 시쳇말로 “열 받는다”는 것이다. 태극권은 상허하실 운동을 함으로서 하체는 견고하고 튼튼하게 하는 반면에 상체는 최대한 이완시키는 자세를 이용하여 상기된 열을 내려준다. 또한 수련 속도를 천천히 느리게 하여 고요한 동작과 호흡을 일치시키는 심신합일(心身合一)속에서 마음의 평정을 얻게 해서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큰 역할을 한다.
이제 정리를 해본다. 맥도날드보다는 우리 음식을, 빠르게 보다는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는다면 건강에 좋다는 것은 모두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운동 역시 격렬하고 빠르게 하는 것 보다는 부드럽고 천천히 하는 쪽이 건강에 좋은 것이라는 결론이 나올 것 같다.
디지털시대에서 아날로그시대로 회귀를 권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슬로우 푸드나, 슬로우 씨티 같은 운동이 디지털시대에 요구되는 이유는 속도만을 추구하며 달려온 사이 잃어버린 가치를 찾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운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요사이 유행하는 많은 서양 운동보다는 몇 백 년의 전통을 가지고 이어져 내려오는 동양의 슬로우 운동인 태극권이 우리 몸에는 적합한 운동이 아닐까?
'태극권'은 서양운동처럼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극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소박하기 그지없는 운동이다. 하지만 운동이 끝나고 난 뒤 오히려 운동 전보다 몸의 상태가 더 좋아 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태극권은 서양 운동처럼 힘을 소모하는 운동이 아닌 힘이 보충이 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느리고 천천히 하는 운동은 운동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한마디만 하고자 한다. 100미터를 1분에 걷기는 쉬워도 1시간 동안 걷는 다면 과연 쉬운 일일까?
'느리고 부드럽게 하는 운동이라고 쉽게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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